'내우외환' 시달리는 134년 전통의 배재고…자사고 탈락에 동문회 분열까지

입력 2019-08-24 07:00   수정 2019-08-26 19:16


배재고등학교가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고 있다. 자립형사립고로 전환된 지 10년 만에 서울시교육청의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한 데다 장학재단 운영을 두고 동문끼리도 분열되는 모양새다. 일부 동문들은 자사고 재지정 탈락의 책임을 지고 배재고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배재학당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사장 퇴진 운동 벌이는 동문들

지난 13일 오후 5시 서울 정동 배재빌딩 앞에는 50여 명의 사람들이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배재고 동문들로 구성된 배재학당총동창회 정상화모임으로 이날 자사고 재지정 탈락에 책임을 지고 곽명근 배재학당 이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곽 이사장이 2016년부터 배재학당 이사장을 지내면서 교장 등을 임명하는 등 학교를 운영해온 만큼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자사고 탈락을 이유로 동문들이 재단 이사장의 사퇴를 요구한 것은 배재고가 처음이다.

앞서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자율학교 등 지정·운영위원회’를 열어 배재고, 숭문고 등 8개 자사고를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시켰다. 배재고는 교육청의 운영 평가 결과 100점 만점 중 합격점인 70점에 미달하는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이 서울시교육청에서 받은 ‘2014~2018년 자사고 감사처분 현황’ 자료에 따르면 배재고는 이 기간 감사·특별장학에서 기관주의와 기관경고 각각 1건, 교직원 징계와 주의·경고 각각 37건과 11건을 받았다. 자사고 재지정에 탈락한 8개의 서울지역 학교 가운데 감사처분 건수가 가장 많았다. 교육청 평가기준에 따르면 △기관경고 건당 2점 △기관주의 건당 1점 △교직원 징계 건당 1점 △주의·경고 건당 0.5점씩 각각 감점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배재고는 감사·특별장학 행정처분 평가항목에서 최대인 12점을 감점받은 것으로 보인다.

배재고가 이달 초 제기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내년부터는 일반고로 신입생을 배정 받아야 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번 지정 취소 결정 관련해서 “지난 5년간 학교가 자사고 지정 취지에 맞게 학교 운영을 했는 지를 평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배재고 동문은 “평가 기간 내내 재단 이사회에 이사로서 학교 운영을 맡아온 곽 이사장이 자사고 탈락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학재단 두고 동문 간 갈등 격화

배재고는 1885년 정동에서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서양식 교육기관 배재학당을 모태로 한다. 배재학당은 1886년 고종황제가 하사한 이름으로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이다. 134년의 전통을 가진 학교로서 끈끈한 동문의식은 배재고의 장점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지난 13일 시위에선 이민열 배재학당 총동창회장도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동문간의 분열은 총동창회가 동문장학회 이사회가 추진하던 정관 변경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동문장학회는 총동창회가 발전기금 마련을 위해 설립한 재단이다. 공익재단이에 교육청에 관리감독을 받는 별도 재단이지만, 동창회가 이사회의 임원선임에 독점적인 추천권을 행사했던 이유다. 하지만 동문장학회는 지난해 11월 총동창회가 갖고 있던 동문장학회 이사 선임권을 삭제하는 정관 변경을 했다. 배재학당 총동창회 관계자는 “정관변경으로 동창회가 각 기수별로 추천을 받은 뒤 투표를 통해 복수후보를 장학회 이사회에 추천하던 방식에서 직능단체는 물론 지역별 단체까지 아무나 후보를 추천하면 이사장이 결정하는 구조로 변했다”며 “이사장이 구미에 맞는 사람을 셀프로 추천하고 셀프로 선임할 수 있는 재단이 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윤영노 전 동문장학회 이사장이 본인이 지지하던 후보가 총동창회장 선거에서 낙선하자 장학재단을 사유화해 동문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며 “8명의 이사 가운데 5명이 배재경제인모임이라는 직능단체에 소속돼 있는데 이 모임이 기금을 출연한 1800여명의 배재학당 동문들을 대표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갈등이 지속되면서 윤 전 이사장이 재단 돈으로 후순위채권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정관에 있는 절차를 지키지 않고 독단적으로 공금을 유용해 손실을 봤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30억원이 넘는 재단 자산의 투자 결정을 감독청의 승인도 없이 임의로 했다는 주장이다. 윤 전 이사장은 절차장 하자는 있었지만, 정부당국의 관리감독을 받는 장학재단에서 공금을 유용하기 어렵고 손실도 입지 않았다는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동문들은 총동창회와 윤 전 이사장을 지지하는 ‘배재학당총동창회 정상화모임’으로 양분됐다. 총동창회가 동문간 비판적인 글을 쓰는 회원들을 강제 퇴출 시키면서 내부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 동창회장과 곽 재단이사장은 모욕죄, 명예회손죄로 정상화모임의 동문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또 총동창회는 지난해 모금한 1억 2000만원을 장학회가 아닌 학교에 직접 전달했고, 장학회 측에서는 이 동창회장을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원로들이 나서 봉합에 나섰지만 소송전으로 번진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5명의 역대 동창회장들과 3명의 역대 교장들은 지난 2월 ‘배재학당 동문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장학회 정관을 원상복귀하고 동창회는 학교에 전달했던 장학금을 장학회에 돌려 줄 것을 요청했다. 장학금은 장학재단에 돌아왔지만, 정관이 회복되지 않자 갈등은 계속되고 동문간 소송전은 격화되는 모양새다. 한 배재고 동문은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라는 학훈에 부끄러운 동문간 고소·고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며 “동문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조속히 해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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